입력 : 2010.02.01 03:30
커지는 도요타 리콜 파문, 왜?
"가속페달이 제멋대로… 브레이크도 듣지 않아"
렉서스 탄 美 일가족의 사망직전 911 통화 공개
미국 ABC 방송은 작년 8월 2009년형 렉서스 ES350을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한 일가족이 응급 신고전화 911에 남긴 급박한 목소리를 지난달 27일(현지시각) 공개했다. 캘리포니아 고속도로 순찰대 소속 마크 세일러씨는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부근 고속도로에서 부인, 딸, 처남과 2009년형 렉서스를 시속 약 50마일(80㎞)로 몰고 가던 중 속력이 120마일(약 190㎞)로 치솟으면서 사고를 당했다.ABC방송이 공개한 911 음성 파일에 따르면, 당시 뒷좌석에 타고 있던 세일러씨 처남은 "가속페달이 제멋대로다.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다. 우리는 곤경에 처해 있다"고 소리쳤다. 결국 4명의 가족은 모두 숨졌다.
사상 초유의 이번 도요타 리콜 사태는 바로 이 사건에서 시작됐다. 미국 현지에서는 도요타 가속페달 결함 관련 사고가 지금까지 2000여건, 사망자는 20명이라고 전하고 있다.
- ▲ 미국 플로리다주 노스 팜 비치의 한 도요타 차량 소유주가 차에 손전등을 비추며 문제가 된 가속페달을 살펴보고 있다. 도요타는 지난달 21일 캠리·라브포(RAV4)·코롤라 등 자사의 주력차종 230만대를 가속페달의 구조적 결함 때문에 리콜했고 26일에는 관련 차종의 판매·생산을 중단했다./AP연합뉴스
도요타 리콜의 심각성은 리콜 자체가 아니라, 리콜이 확대돼 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게 업계 및 전문가들 분석이다. 도요타가 처음에는 결함 가능성에 대해 부인(否認)으로 일관하다가 조사당국이나 언론에 의해 구체적 결함이 알려진 뒤에야 떠밀려 조치를 취한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작년 8월 렉서스 사망사고 이후,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조사 과정에서 가속페달 문제로 인한 차량 폭주(暴走) 가능성을 처음 제기했다. 도요타는 처음에 렉서스 사고는 차량결함과 관계 없다고 주장했지만, 이후 운전석 바닥에 깔린 매트(발판)가 움직이면서 가속페달을 눌러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조사가 나왔다. 작년 9월 30일 도요타는 '매트에 문제가 있었다'며 380만대 렉서스·도요타 차량의 리콜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NHTSA와 미국 언론들은 '매트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속페달 자체의 구조적 결함 때문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도요타는 가속페달 결함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결국 올해 1월 21일 230만대의 차량을 가속페달의 복원력 문제로 리콜했다.
◆가속페달 결함… 사소하나 치명적
도요타가 밝힌 가속페달 결함은 가속페달 뒤쪽의 페달암(arm)이 연결된 부위의 스프링 성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은 뒤 페달에서 발을 떼면 페달이 원위치로 빨리 돌아와야 하는데, 복원이 잘 안돼 차량이 폭주(暴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가속페달의 구조적 결함, 즉 스프링이 탄성·강도를 자동차 수명보다 오래 유지해야 하는데, 엔진의 열(熱), 부품 마모, 가혹한 외부조건 등으로 인해 원위치 환원이 잘 안되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도요타-부품업체 책임공방
도요타의 리콜이 일본차 전체의 품질 이미지 추락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혼다는 지난 29일 차량 창문스위치의 누수에 따른 합선으로 화재 가능성이 있다며 자사 차량 65만대를 리콜했다.
문제가 된 가속페달 부품을 공급한 북미 부품회사 CTS와 책임 분쟁도 시작됐다. 도요타는 CTS에 리콜비용에 상응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방침이다. 그러나 CTS는 29일 "가속페달 부품이 가혹한 환경조건에서 매우 드물게 원위치 환원이 늦어진다는 것은 도요타의 급발진 문제와 관련이 없다"며 도요타의 책임 전가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CTS는 자동차뿐 아니라 의료·항공·우주·방위산업에 전자부품·센서를 공급하는 글로벌 전문업체다. CTS는 이날 성명에서 "도요타·렉서스의 급발진 문제는 CTS가 도요타에 납품하기 이전인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2005년부터 납품한 CTS의 문제일 수 없다"면서 "또 CTS는 렉서스(도요타의 고급브랜드)를 제외한 도요타 차량에만 납품하기 때문에 렉서스 급발진 사망사고와도 무관하다"고 주장했다.